<조선造船 1위국이 가능한 이유>

세계를 향한 선진해양국으로서의 고려가 이러한 세계성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은 주로 천혜의 자원인 해양을 슬기롭게 경영했기 때문이다. 고려는 발달된 ‘우리식’ 조선술과 항해술을 구비하고 있었다.

1274년 고려·몽골 연합군의 1차 일본 원정 때, 하카타 해안에서 벌어진 해전상황에 관해 원나라측 기록인 는 “원나라 전함은 모두 돌풍에 깨졌으나 고려 전함은 대부분 무사했다”고 전한다.

이 해전에 투입된 고려군의 대선 한 척의 길이는 30여 미터로서 90명이 탈 수 있으며 적재량은 쌀 3천 석을 실을 수 있는 250톤 가량이다. 240여 년 후에 마젤란이 세계 일주할 때 끌고간 5척 배 가운데서 가장 큰 배라야 130톤밖에 안되었으니, 그 우열은 자명하다.

이 원정을 위해 고려는 ‘배 위에서 말을 달릴만 하다’고 한, 이러한 크기의 대선 300척을 포함해 모두 900척의 선박을 불과 4개월만에 건조해냈다.

이러한 높은 조선술로 건조된 배에 최신식 무기까지 장착했으니, 고려 전함은 그야말로 무적함대였다. 그 형상을 보거나 소리를 듣기만 해도 항복하고야 만다는 주화(走火, 날아가는 불)는 화약을 태워 생기는 추진력으로 날아가는 일종의 로켓식 무기로서, 사정거리는 보통 화살의 두배가 넘는다.

원래 화약은 중국사람들이 발명해 그 제조법을 줄곧 비밀에 부쳐왔다. 그러나 최무선이 20여 년 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1373년 화약을 개발해 화포인 주화를 배에 설치했다.

이렇게 화포를 배에 설치한 것은 고려가 세상에서 처음이다. 고려 배는 그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바닥을 평평하게 하거나, 배의 앞뒷면을 유선형으로 만들거나, 난간에 방패와 창을 다는 등의 ‘우리식’공법으로 만들어 그 위력을 배가시켰다.한겨레 2005.01.24(월)

일본의 「소우기」 기록에 따르면 고려의 배, 그 중에서도 과선은 철로 뿔을 만들어 적을 부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에 비추어보면 거북선이 바로 고려군함을 원형으로 하여 개발된 것 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배에는 세계최초로 대포를 설치 하였다. ‘1019년 고려전함이 화약을 넣어 공격한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일본 소우기).

고려의 해양경영을 통한 교류망은 멀리 동남아와 대식까지 뻗어갔다. 장보고시대에 이미 신라 상선이 중국의 남단 광주까지 진출한 데 이어, 고려시대에는 그 이서의 동남아와 인도, 대식까지 내왕과 교류가 확대된 사실이 를 비롯한 여러 사적에 기록되어 있다.

11세기 전반에 하선, 보나합 등의 회회족, 즉 아랍-무슬림 상인 수백명이 세 차례나 집단적으로 개경에 와서 수은, 몰약, 소목(蘇木:외과용 약재) 등 방물을 바치고 후대 속에 비단을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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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년 전의 조선 기술에 대한 시대 상황이 이러 했다는데 이를 이어 받아 세계 해전 사상 영국의 넬슨도, 일본의 군신도고 헤이아치로도 비교 조차 안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순신 – 그리고 그를 백의종군 시킨 이조 오백년…

그리고 오늘날세계적 과학 저널 사이언스가 7-8회의 자료 보완을 거쳐 발표한 우리 학자의 논문 내용 그 진위성을 보증하고 있는 이때에- 이를 둘러싸고 일고 있는 국내의 갑론을박을 생각케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이조 오백년 -오색찬란한 색깔다른 당파 대립이 국운의 쇄락을 맞이하게 된 이유가 아니던가?

드디어 다음주 쯤에는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될 그 한쪽의 패자를 보게나 될는지..그러나 우리가 보게될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