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이는 한국통사책 하나 잡아서 읽을 필요가 있는것 같다.

1.중국에게 지나치게 충성을 하고 또 친해지려 하고있다.
물론 역대정권들도 중국과 친교를 맺어온것은 사실이지만
노무현정권처럼 그렇게 지나치게 오바하지않았다.
이것은 민비가 과거 자신의정권유지를 해준다고 청에게
각종 특권을 주었던것과 동일한 사유에 해당한다.
1882년부터 1895년 죽기전까지 친청정책으로 일관했던 민비는
1882년 자신의백성들 3000명을죽인 청군에게 면책특권을주었다.
여기에 1882년도엔 청국상인들에게 관세폐지 특권도주었다.
결국 청은 조선에12년간 주둔했고 이어 각종 만행을저질렀다.
마찬가지로 노무현역시 중국이 백두산에서 미사일훈련을하고
동북공정을 실시하는등 북한에대한 실효적 지배권을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있으나 오히려 중국과 군사교류까지하고있다.
이걸보면 마치 1894년 동학혁명당시 민비가 백성들에게 폭도라는
망언을하였듯이 그도 민심에대해 읽지않고있는게 확실하다.

>> 답글
100년전에 청에게만 특권을 주었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내가 아는 짧은 지식으로 그당시 강화도조약 이후 조선이 맺은 근대 조약에는 19세기 자유주의 질서아래 최혜국대우란 조항이 있었던것으로 안다. 즉 조선이 청에게 준 면책특권과 무관세특권은 이미 조선과 일본의 근대 조약 (강화도조약과 이후 무역에 관한 조약)에서 일본은 청보다 먼저 일본인의 면책특권과 일본상품에 대한 무관세 조항을 강요했다고 한다. 즉 청은 일본과의 최혜국대우를 요청했기에 어쩔수 없었던거다. 물론 청과 일본은 모두 날강도인것은 오십보백보였다.
해군이는 다시한번 이부분을 알아보고 다시 정리하기 바란다.
그리고 대원군과 민비를 노무현과 일치시 하는 것은 이시대 지식인으로서 해군이 답지 않은 논리 비약이라 생각한다.

2.자주권행사운운하며 오히려 국익을 훼손한다.
대원군은 1863년 고종이 즉위한후 약 9년간 섭정하며 각종일을
하였는데 물론 서원폐지등은 약간의긍정적인 효과를 봤다고해도
당백전발행으로 조선의 재정을 피폐하게했다 노무현역시나 마찬가지로
그렇게 지금 하려하고 하는 모습이다 가뜩이나 준조세등으로 세금
올라가는데 여기에 기름을 붓는셈으로 나는 생각한다.
또 대원군은 1866년 병인박해사건을 일으켜 프랑스와 적대관계를
초래했다 여기에 그후 1870년 신미양요역시 얼마던지 타협할수있는
사항이었으나 그는 타협보다는 쇄국으로 일관했다 노무현 역시나
미국과 일부러 싸우고 그리고 이견을 노출시키고있다 결국 이로인해
미국내한국을보는 시각이 상당히 안좋게 변한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결국 대원군이 저질렀던 잘못을 되풀이하는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 답글
대원군이 대외적으로 쇄국 택한것은 그당시 국제정세와 제국들의 저의를 이미 간파했기때문에 그럴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내가 알기론 대원군은 대외적으로는 쇄국을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근대화를 지향했다고 한다. 물론 그당시 조정에서도 해군이의 비판처럼 영구적인 쇄국을 외치는 무대뽀 부류가 있었다면, 아직 내적으로 제국주의와 대항할수 없는 조선의 내공을 인지하고 대외적으로 조선이 외국과 대적? 할수 있는 내적 힘을 축적할때까지 시한부 쇄국정책을 주장한 부류들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시한부 쇄국을 주장했던 부류들은 조선의 근대화를 지향했다고 한다. 때문에 해군이 같이 무조건 19세기 조선의 쇄국 통틀어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당시 척사파들도 과거에 급제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지략에 능한 엘리트 집단이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기 바란다. 아쉬울수는 있어도 그들을 비판할 자격은 그시대를 현재로 하여 살아보지 못한 우리에겐 없는것 같다.

3.결국 문제는 이에대해 권력을잡은이들이 문제라는 사실.

대원군을 추종했던 이른바 수구사대당(청을 숭배하고 또 외세를배격하자
이런식의 생각을했던 홍순목이나 박규수같은자들이다)
친청-친러정책을쓰며 권력을유지했던 민비당(민씨세력을 주축으로했으며
여기에 이완용,이근택등 주요친일파도 가담을했었다)
그나마 개혁적인 생각을했던 서재필,김옥균등의 개화파(1세대인 이동인
유대치 오경석보다는 나았으나 결국엔 실패)
이걸보자면 현재 열린우리당의경우 1,2번이라는 생각이고 한나라당은
2번일 가능성이높다 결국 이건 누구도 해결할수없다.
결국 국민들이 투표를통해 심판하는수밖엔…

>> 답글
3번의 의견은 해군이 개인적인 사견이므로 별로 답글 달 거리가 되지 못하나 한마디 하자면 19세기 일을 지금에 빗대어 고민하면 답이 없다는 것이다.
서재필 김옥균등과 같은 개화파도 나중에는 일본의 저의를 알게 된 이후에는 일본에 대해 적대적으로 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