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국가 일본의 고뇌

5월 28일 도쿄에서는 마쓰오카 농림수산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산하기관인 미도리(綠)자원기구의 담합사건에 연루돼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던 차였다. 미도리자원기구는 전국의 임도(林道) 건설과 관련해 몇몇 회사에 몰아서 일을 주었는데 그 대가로 검은돈이 제공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올봄 우리 대학에는 멀리 홋카이도에서 한 시골 청년이 입학했다. 형편이 어려워 야간부로 들어온 이 청년의 꿈은 홋카이도가 다시는 유바리시(市)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지역사회를 제대로 일구는 것이다. 홋카이도의 서쪽에 위치한 유바리시는 올 3월 도산했다. 본래 탄광도시였던 유바리시는 석탄산업이 쇠퇴하자 관광을 기치로 내걸고 테마파크.리조트시설 등을 대대적으로 건설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600억 엔이 넘는 빚만 남은 것이다. 시의 재정파탄이라는 날벼락을 맞은 주민들은 살길을 찾아 하나 둘 외지로 떠나고 있다.

한 정치가의 자살과 한 시골청년의 상경.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둘은 그러나 깊은 곳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 연결고리는 ‘공공사업’이고 ‘토건사업’이다. 전국적인 임도 건설도, 지방의 테마파크 조성도 다 재정지출에 의한 토목건설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의 ‘토건의존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인체로 치자면 니코틴의존증과 비슷하다. 의존증에 빠지는 경로는 다음과 같다. 정치가는 표를 원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표를 잃기 쉽다. 경기회복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전국적인 경기 부양에는 토목건설사업이 효과가 빠르다. 막대한 돈이 들지만 빚(국채와 지방채)을 얻으면 시행이 가능하다. 사업을 수주한 토건업체는 윤택해지고 여기에 고용된 지역주민도 한숨을 돌린다. ‘은혜’를 입은 토건업체는 돈으로, 지역주민은 표로 정치가에게 보답한다. 효용을 확인한 정치가는 새 사업을 추진한다. 위의 사이클이 반복된다.

실제 선진국 중에서 일본만큼 공공사업 비중이 큰 나라는 없다. 1990년대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의 공공사업 지출은 국내총생산 대비로 미국이나 독일의 2~3배에 달했다. 대신 사회보장 관련 지출은 상대적으로 억제되었다. 일본 사람 스스로 서구의 ‘복지국가’에 대비해 자기 나라를 ‘토건국가’라 야유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 시기 일본 경제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공공사업의 ‘약발’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과 빚만 눈덩이처럼 쌓였다. 현재 일본 정부의 채무잔액은 국내총생산의 175%에 달한다. 미국은 64%, 독일은 71% 수준이다.

이처럼 국가의 재정파탄이 우려되자 최근 들어 일본도 공공사업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담배를 피워본 사람이라면 니코틴의존증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안다. 토건의존증도 마찬가지다. 당장 파이가 줄어든 토건업체는 최소한의 수주라도 확보하기 위해 담합과 정치인 매수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이미 토건업이 기간산업으로 돼 버린 일부 지방에서는 수주축소→고용축소→내수위축의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이런 ‘금단현상’이 장관의 자살과 시골청년의 상경으로 나타난 셈이다.

돌이켜보면 토건국가 일본의 기초를 다진 사람은 70년대의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다. 그는 ‘일본열도개조론’에서 “공업재배치와 교통.정보통신망의 형성을 통해 인구와 산업의 지방분산을 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국토균형개발’은 정치지도자가 누구나 외치는 슬로건이 됐고 토건사업은 그 유력한 수단이 됐다. 하지만 전국의 땅값만 올랐을 뿐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심화했다. 현재 지방에 남아 있는 것은 교통시설.공공시설.관광시설 등 ‘시설’뿐이다. 이를 일본 사람은 “하코(상자)”라 한다. 껍데기는 있는데 이를 운용할 알맹이는 없고, 하드는 있는데 정작 중요한 소프트는 없다는 의미다.

우리는 어떤가. 두려울 정도로 모든 게 일본을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가. 오랜 고뇌 끝에 지역자생력과 시민자율과 주민복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고 있는 현재의 일본을 보면서 우리 정치지도자는 어떤 교훈을 얻을지 무척 궁금하다.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