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가 계셨기에 우리가 밥먹고 삽니다.

 조선조는 일제시대보다도 더 악독한 시절이었습니다.  무능한 관리, 엉성한 리더쉽,, 조선은 세종때 반짝 이외에는 제대로 힘을 쓰지도 못한 최악의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 그런 국민들의 정신 상태에서 단지 식민지만 안 당하고 그냥 있었다면,지금 우린 어떤 꼬라지로 살고 있을까요?  우선 중국으로부터 독립 자체도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크니다.아시다시피 대한제국 건국은 일본이 청나라를 꺾었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만약 조선에 대해 일본이 간섭을 안 했다면 조선 혼자서 청나라나 중화민국과 독립전쟁을해야 했습니다.   결과는 오늘날 티벳꼴 났을 가능성이 90%입니다. 아니면 조선족 자치구와 비슷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민비같은 보수반동들이 꾀한 것은 바로 저렇게 자기 사리사욕만 채우는 것이었습니다.반면 김옥균, 이완용 같은 분들은 일찍 일본과 미국에 유학을 갔다와서 그나마 눈이 띄인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변도 일으키고 혁명도 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나자. 그 당시 제국주의 시절에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미 미국과 일본이 협약을 맺은 걸 알고 최대한 조선에 유리하게 병합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완용 초대 내각 수상은 후대에 안 좋은 평가를 받는 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불명예의 먹을 뒤집어 쓰신 분입니다. 그분은 끝까지 조선왕조만은지켜줄 것과 한국이란 국명은 사용하게 해달라 일제에 간청했습니다. 또한, 합방은 식민지가 아닌오스트리아 헝가리식의 대등한 관계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연고로 3.1운동때에도 이완용님은 33인의 한 사람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당대 최대 명필이었고, 한국인 최초 미국 유학생이었던 이완용 각하,그는 죽을때까지 일본어를 쓰지 않고, 영어로 대화했으며, 순종과 조선왕조에 신하의 예흫 다했다고 합니다.  많은 친일파라 손가락질 당한 분들, 실은 선각자 내지 현실주의자가 많았습니다. 병자호란때 소국이 강국에 명분만으로 대들다 20만이나 노예로 끌려간 역사를 잘 알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볼땐 그때 한일합방은 우리의 의지로 멈출 수 잇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오히려 후사를 도모한 을사5인의 판단은 후세를 위해 좋았습니다. 김구나 안중근이가 수상이었다면 독립이 가능했을까요? 오히려 수십만이 죽고 한국은 해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대동아전쟁 당시 일본에 협력한 많은 친일분들도 원래 민족운동 하던 분들이 많은데 그들이 일제의 시책에 동조한건 간디나 네루가 영국의 전쟁에 지원병을 보낸 것처럼, 조선인의 지위향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동화정책은 흑인이 백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듯, 차별을 없애기 위한결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친일애국자분들을 왜 우린 매국노로 일방적으로 매도를 해야 했는가,(물론 일부 반인륜적인 놈도 엄연히 있엇죠) 그건 연합국에 잘 보여야 했던 과거 일본의 동맹이었던 조선의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전범국으로 몰리기 않기 위해 다들 갑자기 독립운동가로 변신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친일파 분들이 마치 매국노인양 일정 지위 이상이면 다 욕을 먹는게 안타깝습니다. 그분들이시대를 잘 타고 났으면 애국자로 인정받을 분들이 많은데,, 김일성이 추종하는 홍위병들이 주로잘 모르면서 쫑알쫑알 거리죠… 어서 뉴라이트 보다 더 제대로된 역사교과서가 나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