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한국을 지배할 수 밖에 없었는가?

*일본은 어떻게 스스로 개화에 성공하였는가?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루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승자에게 쉽게 복종하는 일본문화, 그리고 봉건제도 등이 있을 수 있다.

유럽과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이유는 봉건제도 때문이다.

지방 분권인 봉건제도를 통해 각 지역 경제가 발전하고

중산층이 형성되어 나중에 근대화의 토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에도시대 중기부터 평민층이 주도한 조닌문화는

중세후기의 서양의 그것과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유교원리주의와

중앙집권식 국가제도를 가졌던 청과 조선 등은

끝까지 스스로 개화를 이루지 못하고 외세에 먹히고 만다.

이는 세계의 변화를 무시하고

오로지 구태의연한 원리와 절대왕권에 집착한 탓이다.

후진적 봉건제도를 지키기 위한 지배층의 반동적 작태는

도태되는 기형아와 같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조선은 열강들이 그냥 가만히 놔뒀어도

결코 스스로 개혁을 못하고

지금까지도 미개한 농업국가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히말라야 산기슭의 작은 나라 네팔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허무 맹랑한 자생적 근대화론(자본주의 맹아론)

1960년대 북한 학계에서 시작된 논리로,

조선후기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는 이론이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사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 계급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

동원한 허무맹랑하며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있는 사이비 이론이다.

즉 고대노예제 사회에 작태를 보이던

이씨조선에서 갑자기 공산주의 혁명의 발생을 설명할 수 없자,

(주.1]맑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고도화로 인해

무산자 계급과 유산자 계급간의 계급투쟁의 결과 , 공산주의 혁명이 발생한다

라고 설명하였음)

급조된 공산주의자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이론이 식민지근대화론이다.

조선 말기 극심한 정치적 부패와 국민들의 경제가 파탄났던 것,

그리고 빈발하던 농민봉기 등을 고려하면

조선 내부에서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있었다는 논리는 허무맹랑할 뿐이다.

*수탈 이론 VS 식민지 근대화론

일제는 조선을 먹은 후 엄청난 수탈을 해갔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국내총생산의 80%를 유출해갔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시대 내내 조선인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초근목피를 하던 시대는 바로 조선말기였다.

당시 재정은 파탄나고 관리들의 부패와 착취로

이미 대다수의 국민들은 연명하기도 힘들었다.

초근목피에 무능한 이씨조선 왕조에 시달린 농민들이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으로 팔려가

노예처럼 혹사당한 예는 이 시대를 잘 말해준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80%를 뺐어간다고 해보자.

아마도 모두 굶어죽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반대로

일제시대 내내 조선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고

경제도 매년 3.7% 이상의 성장을 계속했다.

이는 수탈이론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착각하는게 있다.

한반도가 수천년동안 거의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은 것은

우리의 독립심과 저항정신이 강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큼 큰 착각도 없다.

한반도는 식민지로써 전혀 매력이 없는 땅이다.

이렇다할 자원도 없고, 그렇다고 기후가 아열대라서

플랜테이션 농업을 할수도 없다.

거기다 대륙의 변방에 멀리 떨어져 있다.

침략자 입장에서도 굳이 점령할 필요가 없는 땅이다.

그래서 그냥 조공이나 받아먹는 선에서 유지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이것은 조선을 키워서 잡아먹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일본의 일부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발전시켜서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목적은 일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자기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 나라가 어디있는가?

중요한 것은 결과다.

그런 결과로 일본 때문에

조선이 빠른 시간에 근대화된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스스로 개혁을 해서 근대국가를 만들기에는

우리의 완고한 문화유산과 이념,

유교원리주의 같은 것 때문에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성황후라 불리우는 중전민씨역시 백성은 안중에 없었고,

자신의 절대적 왕권을 지켜, 자신의 아들 순종에게 절대왕권을

넘기기에 급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