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신라= 서신라= 강회신라 였다.

장보고를통한 역사추적을 해보면
장보고의 부친은 절강성 소흥에서 태어났다. 절강성 소흥이 당나라에 귀속되자,
장보고의 부친 장백익은 강소성 연수로가서 강회신라에 귀화를 하게된다.

강회신라라함은 양자강과그 북쪽위에 있는 회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양자강과 회수사이의 땅은 충청,전라도보다 더큰 땅이다.
고구려 백제가 멸망하고도 대륙 강회신라는 계속 존재 했었다는 사실이다.

장보고의 고손자 장정필은 고려초기 안동의 호족이된다.
안동은 반도 경상도 안동이 아니라 강소성 연수현으로
안동 도호부 자리이다.

연수는 삼국사기에서 나오는 사 ” 라고 표시된 지역으로서당에서 돌아온
정년이 살았던 곳이며, 정년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장보고가 해적을 소탕했던 청해진은 전남 완도가 아니다.
청해진은 바로 산동반도 중부에 위치한 청” 지역과산동반도 남쪽에 위치한
해” 지역으로서 해”지역은 대륙 강회신라국경지역이다.

장보고는 이두 지역을 합쳐 청해진을 세운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산동반도 끝자락인 정해위를 청해진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원래의 백제지역이었던 산동반도는 당의 수중으로 넘어갔었기 때문에,

신라국경 북쪽지역인 청해진을 중심으로 노예를 약탈해갔기때문에,
장보고가 당나라 해적들을 소탕하고 청해진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장보고가 전면에 들어서기전에는

북쪽으로 이사도가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이미 제나라를 세워 통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보고는 이사도를 평정하고 당과의 사이를 조율할수 있었다.

기자는 하남성의 서화에 살았고 그의능은 안휘성 몽성에 있다.
즉 하남성 서화를 기점으로지나와 동이가 마주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김유신은 조상이 수로왕이며 수로왕은 소호김천씨의 후손이고,
소호김천씨의 조상은 황제헌원이라고 밝혀졌다.

황제헌원의묘는 섬서성에 위치하고 있다.

장보고가 활동한 828-848년대를김부식이 1111-1117 년에 약 270년이
지난후에 중국으로가서 필사해온 삼국사기 기록은청해진이
완도라고 기록한 김부식의 기록은 틀렸다.

전남 완도사람들의 전승기록이전무하고, 청해진이라는 위치도 잘못됐다.
그당시 1만군대의 주둔지라면 그에딸린 식솔들만해도 5만이 넘었을텐데,
그당시 완도는 그만한 주민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조선시대만해도 충청,전라인구를 다합해도 5만호도 되지않았다는것을알면,
완도는 분명 청해진이 아닌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