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 광기에 비수 꽂은 아나키스트

군국주의 광기에 비수 꽂은 아나키스트

[한겨레] 고토구 슈스이와 함께 일본의 아나키스트 운동을 대표하는 오스기 사카에(1885-1923)의 과 를 묶어 한 권으로 번역했다. 일본 육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오스기는 자신을 길러준 일본 군국주의를 향해 비수를 꽂은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혁명가다.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일본 헌병대에 의해 살해당하기까지, 그는 여느 아나키스트 못잖게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육군유년학교에 입학했다가 일본 군국주의의 ‘집단적 광기’를 견디지 못해 학교를 떠난 그는 이후 동아시아 아나키즘 운동의 한 복판을 떠나지 않았다.

짧은 삶을 활발한 저술·조직활동으로 채웠던 그의 죽음은 일본 아나키즘 운동을 지피는 불씨가 됐다. 당시 일본의 17개 사상단체와 7개 노동단체가 오스기를 추모하며 ‘흑색청년연맹’을 발족시켰다. 그의 영향을 받은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이 이후 국내로 들어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독자에게 이 책은 한국 아나키즘 운동의 ‘외전(外傳)’ 격이다. 당시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를 새롭게 들여다 볼 근거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오스기 스스로 이동휘·여운형 등 조선 혁명가들과 직접 교류했으며, 박열 등이 가담한 조선인 아나키즘 단체 ‘흑도회’를 후원했다. 이 때문에 조선인 아나키스트 손명표는 “도쿄의 인구를 다 잃더라도 오스기 사카에 한 사람을 잃은 손실만 못하다”고 추모하기도 했다.

노엄 촘스키의 표현을 빌자면 아나키즘은 “인류의 역사가 있는 한 영원히 계속될, 사상과 행동의 역사적 경향”이다. 무정부주의나 테러리즘으로 이를 좁혀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아나키즘에 대한 중대한 오독이자 또다른 이데올로기다. 아나키즘 내부에는 자유로운 개인과 공동체, 일하는 자들의 연대에 대한 이상이 역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