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에서 은혜란 없다.

국제관계에서 은혜를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물론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미국이 도와준 것도

사실고 원조를 해주고 경제개발에 도움을 줬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다 미국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고 한국도 이에대한 댓가를 충분히 지불했다

고 보아야 옳다.

1950년대의 원조경제와 60년대 이후 개발원조는 왜 그랬을까?

한국은 동서냉전시 최전선이었고 미국의 생각은 한국이 밀리면 일본도 따라서

공산화 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50년대는 전후 복구를 위해

원조를 하였고 60년대 이후는 미국의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군사적 우위

만으로 대결하는 것 보다는 자본주의 체제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더불어 미국의 상품시장 확대를 위해 남한의 경제발전을 도운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국이 가지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들 수 있다. 쿠바에

소련이 미사일 기지를 건설했을 때 미국이 얼마나 큰 위협을 받았는가?

마찬가지로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존재는 중국에게 있어 크나큰 위협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은 중국이 자본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13억이라는 거대시장과 세계의 굴뚝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이에대한 시장공략을 위한 교두보로서의 의미도 매우

크다.

이미 미국은 그들이 투자하고 희생한 결실을 이미 거둬가고도 남았다. 국제관계

에 은혜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보는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특히나 자국의 이해

관계에 따라 철저히 움직이는 나라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과거에 도와준 것을

잊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정치 외교적 관계를 도덕적 잦대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이야기 이다.

우리가 미국의 카트리나 피해를 모른척 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만약 미국을 돕

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과거 입었던 은혜를 갚는 차원이 아닌 우리와 미국의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여 앞으로의 부드러운 정치외교적 또는 경제적 관계형성을

위한 국익차원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